라이프로그


순간을 믿어요 9 순간을 믿어요

평온한 평일의 낮시간을 보내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고 밑줄을 몇 번이나 그으며 책을 읽었다
반주가 있는 저녁을 먹었고 미뤄둔 일기를 썼고 다정한 메시지를 보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만큼 
나는 아직 좋아하는 일이 주는 즐거움과 잘해야하는 일이 주는 부담감의 격차가 크다

한 눈에 보이게 나열해서 하나 하나 기억하고 싶은 휴가를 보냈으니
단 하루만큼의 평화를, 그 하루의 한 시간만큼의 평화를 바라면서
즐겁게, 격차를 줄여나가는 일상을 되찾아야지






140529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 소설가 김연수 아름다운 날들

지난 29일 저녁,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의 세번째 순서로, 소설가 김연수의 강연이 있었다.
 
* 사진자료 김범수 컬처메신저 

120석이 가득 찬 강연장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 오늘' 이라는 이 날의 강연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 후, 김연수 소설가가 등장했다. 쑥스러운 듯 강연장의 가운데에 앉은 그는 '나는 왜 그을 썼는가' 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 자신이 글을 쓸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영문과에 진학하리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던 때 추억으로 시작해 1990년대 초, 치열했던 학생운동을 언급하며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자신이 첫 시와 소설을 쓰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우연히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서울대생이 할복하고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 그는, 후에 그 학생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언론과 사회적 반응을 보고 나서 의문점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세계라는 것,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을 위해 삶을 포기한 학생의 죽음의 무게가 사회적 판단에 의해 너무나도 가벼워졌을 때, 그는 비로소 무언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걸까, 그런 판단으로 한 사람의 삶의 의미라는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왜 이 세상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는 것일까."

 그렇게 그가 처음 쓴 소설이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였다. 이 작품으로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 그는 소설이라는 것을 다시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꾿빠이 이상>을 연재하게 되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의 다른 의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더 이상 어떤 문장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나라는 자연인으로서의 한계를 넘는 무언가가 또 다른 문장을 쓰게 만드는, 그런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 그는 다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나온 소설이 <네가 누구든, 얼마다 외롭든>이었다. 

 이후로 그는 세계라는 것은 각자에게, 모두에게 있는 것이고 그 여러겹으로 된 세계는 다시 하나라는 생각으로 계속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 구상중인 소설의 구체적인 배경과 내용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는데, 최근엔 소설을 구성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알기 위해 태어난 곳, 공부한 대학 등 다양한 장소를 찾아 필사적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공부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소설가가 아니라면 알지도 못했을 사람의 삶을 알아보려 이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이 산다는 것에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17세기의 역사를 지금 공부하게 되면서, 이렇게 몇백년이 흐른 뒤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이 결국 소설의 시각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그는 벤야민의 글을 인용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호모 사피엔스의 보잘것없는 5만 년의 역사는 지구 상의 유기체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하루 24시간의 끝자락 마지막 2초에 해당한다.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는 이 척도에 비추어본다면 기껏해야 마지막 시간, 마지막 초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100년도 못사는 인간이 자신의 생애동안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300년 정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사는 동안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 모든 삶이 실패한 삶이 아니라는 것. 300년의 시각으로 본다면 실패한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의 삶도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300년이라는 시각이 결국엔 소설의 시각이라고 말하며 그는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김연수 소설가는 본인의 목숨을 포기하며 무언가를 말하고자 했던 서울대생의 삶처럼, 누군가의 삶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생애를 넘어서는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누구의 삶도 실패한 삶이 될 수 없다는 그의 이야기가 어떤 말보다도 큰 위로가 되었다. 너무 빨라진 삶의 속도 속에서 단 몇 분 몇 초의 여유도 가지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봐 조급했던 마음들을 위로해주는 시간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에도 길게 줄을 선 관객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던 김연수 소설가의 마지막 모습까지 이 강연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작은 강연장 안에서 모두가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그 순간도 마치 소설같았던 강연이었다.

 
 *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은 6월 12일 하림, 6월 26일 아마도이자람밴드의 강연으로 계속 진행된다. 
   신청은 예술가의집(http://artisthouse.arko.or.kr/index.jsp)에서 가능하다.



2014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 : 오늘의 예술과 인문학을 만나는 시간 아름다운 날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이 지난 5월 1일 연극배우 김소희님의 강연을 시작으로 격주 목요일마다 진행된다.


  문화예술과 인문학이라는 두 주제의 접점을 찾아가는 강연 형식의 '오늘' 콘서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가들이 참여한다.

 문화예술과 인문학의 가치를 콘서트의 형식을 통해 나눔으로써,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참여자들에겐 더 가까워지는 문화예술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연극배우 김소희님의 지난 1일 첫 강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의 강연이 격주 목요일 혜화역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다가오는 5월 15일에는 영화감독 장항준님의 강연이 진행된다. 시트콤작가로 시작해, 시나리오 작가, 영화 연출, 드라마 각본 연출등 다양하게 '창작자'로서의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창작자의 웃는 오늘 : 지지 않고 걷는 창작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5월 29일에는 소설가 김연수님의 강연이 진행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7번 국도>, <원더보이> 등 다작과 다양한 문학상 수상을 통해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 오늘 : 美文의 책, 美文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소설가 김연수님은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여전히 청춘의 문장을 쓰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강연 제목도 그러하듯,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문장들을 많이 읽고 따라 쓰곤 했었다. 
 
"곧 나는 삶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나만이 느꼈다고 생각했던 뭔가를 또 다른 누군가도 봤으리라고 짐작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기이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인지 깨닫게 됐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79p) 

 이 강연 역시도 '기이하고도 따뜻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6월 12일에는 음악가 하림님의 강연이 진행된다. <위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와 같은 음반 발표는 물론, 아뜰리에에오라는 예술커뮤니티에서 문화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유랑하는 오늘 : 세상을 유랑하는 예술가를 위한 안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6월 26일에는 국악가 이자람님이 속해있는 이자람밴드의 강연이 진행된다. 천상병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곡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자람밴드는 <노래하는 오늘 : 봄바람 살랑 불지 않았다며는>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 아르코 예술인문콘서트 '오늘'의 참가 신청은 예술가의 집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140319 <2014 예술감상프로그램 예술깊이읽기 : 한국 대중음악사의 열 두 장면> 아름다운 날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국립예술자료원이 후원하는 2014 예술 감상 프로그램 예술 깊이 읽기중 <한국 대중음악사의 열 두 장면>

강연에 다녀왔다.

 

 이준희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진행하는 이 강의는, LP음반이 나오기 전 사용되었던 희귀 SP음반과 함께 한국대중음악의 시대적 흐름을 짚어보는 강연으로, 12주 동안 독립적인 주제로 진행되는 강연이다. 내가 간 날은 이 강연의 첫 날로, ‘최초의 대중가요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강연시간에 맞춰 들어간 예술가의 집의 영상감상실에는 40여명의 수강생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인상 깊게도 6-70대인 어르신 분들이 많이 와계셨다. 차분히 이준희 교수의 소개와 함께 시작된 강연은 먼저, ‘최초의 대중가요들이라고 강연에 붙여진 주제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최초‘-이라는 복수형 어미가 호응하지 않는 제목의 이유는 한국의 대중음악의 최초를 논의하는 의견들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각의 이유로, 대중음악의 최초라고 불리는 여러 곡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연극화한 공연에서 여주인공인 카추샤가 부른 노래로 보이는 <카추->1916년 악보 형태로 신문에서 처음 발표된 것으로, 그 시기가 가장 빨라 대중음악의 시초로 보는 작품이라고 한다. 다만, 국내에서 음반으로 발매된 적은 없고,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번안된 곡이었기에 최초라는 수식을 붙이기 애매하다는 판단이 덧붙여졌다.


   ▲ 1960년, 영화 <카추샤>에 삽입된 이미자의 <카추샤의 노래> 


 다음으로 들어본 곡은 <닙보노홍>으로 현재 <희망가>, <이 풍진 세월>, <탕자자탄가> 등 다양한 제목으로 존재하는 곡이었다. 제목이 많았다는 건 그만큼 대중적인 인기가 높았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곡 역시 미국의 찬송가인 <When we arrive at home>19세기 중반에 일본으로 넘어가 다시 한국으로 번안된 곡으로, 3.1운동 직후의 민족 전반의 열패감과도 관련 있는 가사로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이 인기의 이유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국악조 연주 버전과, 기생이 부른 버전 등 다양한 버전으로 음반이 발매되었는데, 오래된 음반인 만큼 음질이 좋진 않았지만, 그 세월과 시간을 살아온 것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 오히려 더 인상 깊었다.


 그리고 1926년에 발매된 <사의 찬미>는 당시 유명했던 성악가인 윤심덕이 부른 곡으로 그녀의 극적인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곡이라고 한다. 극작가인 김우진과의 이뤄질 수 없던 사랑이 불우한 두 예술가의 사랑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동반 자살을 택한 그들에게 아직까지 외국에서 잘 살고 있다, 곡의 흥행을 위한 타살이다 등의 루머도 많은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그 인기와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것 같았다



   ▲ 1926년,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 



 이어서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멜로디인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앞서 소개한 곡들과는 달리 번안곡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곡이기도 했다. 사실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아리랑 멜로디는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에 삽입되면서 민족의 노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민요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 점에서 온전한 창작 멜로디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나 역시 한국의 지역별로 색채도 뚜렷하고, 다양하게 변형된 민요라고 생각해왔기에, 나운규감독이 고향 등지에서 주민들이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편곡을 한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견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음으론 <낙화유수> 또는 <강남 달>이라고 불리는 곡이었다. 이 곡 역시 당시 상영되던 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가로 쓰였으며, 확실한 창작곡이라는 점이 이전의 곡들과는 차이를 두는 곡이었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후보곡들은 각각 그 최초의 대중가요에 부합하는 조건의 조합과 존재의 방식이 달랐다. 번안곡이 아니라는 것, 음반이 발매 된 곡인 것, 창작곡이라는 조건 등. 그리고 이 거의 모든 조건이 조합된 마지막 후보곡이 남아있었다. <봄노래 부르자>가 바로 그 곡이다. 순수 창작곡이자, 음반을 통해 처음 공개된 곡이며,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봄노래 부르자라는 제목 역시 조국의 광복이라는 유의미한 해석을 갖게 된 곡이라고 한다.


 총 6곡의 최초에 대한 후보곡들을 실제 녹음된 음반으로 들으며 교수님의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이 자리는 무척 뜻 깊었다. 실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분들이 당신들의 그때의 경험과 생각을 말씀도 하시면서, 강의해주신 교수님과 의견을 나누던 모습 역시 인상 깊었다.


 음악이란 순간의 예술이라 생각한다. 가사가 만들어지던 순간, 멜로디가 더해지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로 불리던 순간,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순간까지. 이 모든 순간들이 다 합쳐지는 것이 음악이다. 그렇기에 음악은 순간에만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제자리라는 것이 없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는 예술이다. 탄생된 순간은 존재하지만, 고정된 자리가 없을 뿐, 그래서 늘 진행형인 예술임을 절감할 수 있었던 강연이었다.

평소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자료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이라는 전반적인 예술이 대해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꾸준히 듣고 싶은 강연이었다.


* <2014 예술 감상 프로그램 예술깊이읽기; 한국 대중음악사의 열 두 장면>은 매주 수요일, 예술가의 집에서 611일까지 총 12주 동안 진행된다.

 

 



140225 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 : 이희란 <역사의 현재> 아름다운 날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인 '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 중 

이희란 작가의 <역사의 현재>를 보고 왔다.

 

구 서울역사이자 현재 다양한 문화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문화역 서울 284 RTO극장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공연의 제목에도 쓰였듯 이희란 작가의 <역사의 현재>에서'역사'란 중의적으로 사용 된다. 공연장이기도 한 역사(驛舍)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歷史), 이 두 가지 의미를 쓰는 이유는 단순히 공연장이 구 서울역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형 할인 마트의 쇼핑카트가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관객 입장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공연장 안은 이미 무언가 분주했는데 

이 때문에 공연이 시작 된 것인지 그 처음이 언제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부셔진 벽돌 위에 쓰러진 듯 또는 꿈을 꾸는 듯 누워있는 출연자들과, 구 역사(歷史)가 역사(歷史)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하고 있던 

시대의 영상들이 공연장의 배경이 되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한 남자가 계속 해서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있었다.

 

"소를 팔아서라도 내 아이는 서울로 보낼 거야."

"행복의 종착점, 모든 욕망의 종착지 서울"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 하에 거점 도시에 모든 개발 정책이 집중 되어 있었고, 서울은 그 중에서도 단연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농어촌지역에 대한 지원이 단절됨과 동시에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진 수많은 농어민들에게 서울은 새로운 일자리가 가득한 희망의 도시였으며, 성공의 시작점이었다.

 

"서울에선 모든 것이 즐거워" - "단절"

"서울에 가면 성공할거야"     - "소외"

"서울은 꿈이고 희망이야"     - "방황"


그때의 시대 상황을 재연하듯 상경하는 사람들의 희망찬 나레이션은 공연장에 계속 흐르고 있었고, 그에 대답하듯이

 단절, 소외, 방황과 같은 단어를 나열하는 나레이션 역시 이어지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이란 살아남기 위해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다.”

 

생계에 대한 걱정, 성공에 대한 희망, 배움에 대한 열망 등 서울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열차처럼 가득했지만 절망적인 단어들을 쏟아내는 나레이션처럼 그들의 삶은 애초의 욕망에 부응할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급진적이었던 경제 정책이었던 만큼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노동 조건은 열악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은 온전한 기반 하나 없이 상경했던 사람들이었다.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그들은 단순히 물질적 빈곤뿐만이아니라 인간 소외의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살았다.


벽돌 위에 쓰러져 있던 출연자들이 일어나면서 각자가 쇼핑카트를 잡고 공연장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그 중 한 명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홀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방황한다. 이 곳이 어디냐고 묻는 그에게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유일한 답을 주는 것은 그의 손에 쥐어진 작은 스마트 폰이었다.

 

"여기가 행복의 종착점 서울역 맞아?"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까?"

"돈이 뭐지? 행복은 뭐지?"

 

하지만 그의 끊임없는 물음에 유일한 대답을 내던 스마트 폰마저도 지도를 검색하는 등 엉뚱한 검색 결과만을 알려주게 된다. 그리고 허탈해 하던 그의 마지막 말은 "럭키 서울" 이었다. 이에 스마트 폰은 틀은 음악이 흐르며 절망한듯한 남자는 쇼핑 카트 안에 실려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 때 공연장에 흐른 럭키 서울이라는 노래는 가수 현인이 1949년에 발표한 가요로 해방 이후 환희에 찬 서울의 이미지를 노래하는 곡이다.

 

너도 나도 부르자 희망의 노래 /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 SEOUL SEOUL 럭키 서울

 

위와 같은 후렴구로 반복되던 노래가 끝나갈 즈음 처음부터 벽을 쌓고 있던 한 남자가 그 벽 위에 럭키 서울이란 글자를 새긴 후 쇼핑카트를 밀고 나가 그 벽을 무너뜨리면서 공연 전체는 마무리 된다.

 

이 공연이 진행되고 있던 225일 서울역 광장에는 철도 민영화 저지와 현 정권의 공안탄압 중단 요구를 위한 국민총파업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6-70년대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욕망과 절망은 단순히 공연에서만 재현되는 과거가 아닌 것 같았다. <역사의 현재>라는 공연의 제목처럼 구 서울역사를 통해 과거 뿐 아니라, 역사(驛舍) 밖에 현재진행형의 역사(歷史)를 직시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희망의 도시일 서울과, ‘아직도절망의 도시일 서울의 모습을 모두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공연이었다.

 


1 2 3 4 5 6 7 8 9


통계 위젯 (화이트)

00
1
6078